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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19. 21:00

- 이건 당신이 방금 전에 산 것과 비슷한 겁니다. 하지만 더 나은 거죠.


건물 외벽을 장식한 거대한 전광판 위로 NBN의 광고 홀로그램이 잔잔한 물결처럼 흘렀다. 유혹하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케이트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근거지에 도착하면 프랙터의 설치가 완료되어 있을 것이다. 브루트 포스는 투박하지만 여전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적어도 어떤 상황에서는 말이다.


얼마 전, 그녀는 이솝의 전당포에 들렀다. 아직 가난에 허덕일 정도는 아니지만 되도록 많은 자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큰 싸움엔 큰 준비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녀는 아끼던 낡은 하드웨어 하나를 넘겼다. 아쉽긴 했지만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릴 때는 아니었다. 이솝은 기계화된 오른손을 딱딱 두들기며 3크레딧을 건넸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그녀는 한 원격 서버로의 런을 시도했다. 정황상 아젠다가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서버였다. 그 서버에 방벽 아이스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새로 설치된 아이스의 정체에 대해선 소문만 무성했다. 또 다른 방벽일까? 아니면 코드 게이트? 파수는 곤란했다. 아쉽게도 킬러를 준비하기엔 시간이 너무나 빠듯했다.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데이터 레이븐이었다. 추적 성능을 가진 파수. NBN은 이제 그들의 근거지를 쉽게 알아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이 눈 밝은 까마귀는 성긴 발톱을 가졌다. 그녀는 추적을 감수하고 더욱 깊게 런을 수행했다. 남은 것은 방벽 하나와 코드 게이트 하나. 그 뒤로는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줄 아젠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 예상이 맞다면….




안드로이드: 넷러너는 어떤 게임?

 


안드로이드: 넷러너는 2012년 발매된 SF장르의 LCG[각주:1]로 매직 더 개더링의 아버지인 리처드 가필드가 1996년 개발한 동명의 TCG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넷러너에서 플레이어는 세계를 좌우하는 거대한 기업이나 기업을 상대하는 해커인 러너 중 하나가 되어 중대한 목표인 아젠다를 획득하기 위한 대결을 벌입니다.


LCG 장르의 선구자로서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돈을 내고도 얻을 카드를 운에 맡겨야 하는 다른 TCG들과 달리 하나의 패키지에 덱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치의 카드가 이미 들어 있어 불필요한 지출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수많은 확장팩들을 전부 구매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라이트한 플레이어라면 코어 세트만 가지고도 재밌게 즐기기에 충분한 값어치를 합니다.


안드로이드: 넷러너의 또 다른 특징은 두 상대가 서로 다른 룰을 가지고 게임을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기업과 러너는 공통적으로 아젠다 카드를 획득해 7점의 아젠다 점수를 모은다는 주요 목표[각주:2]를 가지고 있지만, 아젠다 카드는 기업 덱에만 들어있기 때문에 러너는 이를 기업으로부터 훔쳐내 점수를 얻어야만 합니다. 물론 기업도 아젠다를 내기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요구치 만큼 자원을 투자해야 득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외적으로는 러너의 공격에 대한 대비를 하면서 동시에 내적으로는 기업을 발전시켜나가야 하며, 러너 또한 외적으로는 방어가 허술한 서버를 노려 쉴새없이 기업을 방해하면서 내적으로는 해킹을 위한 준비와 역습에 대한 방어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한정된 행동 자원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다양한 세력과 아이덴티티


기업과 러너의 투쟁을 다루고 있는 만큼, 이 게임의 재미는 각 세력의 매력이 얼마나 잘 나타나 있는가에 따라 좌우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마치 매직 더 개더링이 색상별로, 하스스톤이 직업 별로 정체성을 확립했듯이, 안드로이드: 넷러너 또한 같은 기업이나 러너 안에서도 다양한 세력들을 나누고 그 세력들을 다시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로 나누어 플레이를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코어 세트를 기준으로 기업은 NBN, 하스-바이오로이드, 진테키, 웨이랜드 컨소시엄의 네 가지 세력, 러너는 셰이퍼, 크리미널, 아나크의 세 가지 세력으로 구분되며, 각각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제공됩니다. 다양한 확장팩을 통해 새로운 카드들과 아이덴티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업 세력



NBN은 전 세계의 정보매체를 쥐락펴락하는 대형 언론사입니다. 이에 걸맞게 NBN의 카드는 러너를 추적해 큰 피해를 주거나, 카드를 드로우하고 아젠다를 빠르게 발전시키는 등 정보전과 관련된 효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코어 세트를 기준으로 NBN에는 태그를 붙이는 효과는 많으나 정작 태그를 활용하는 효과는 적어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스-바이오로이드(HB)는 바이오로이드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거대 기업입니다. HB의 카드는 클릭이라 불리는 행동 기회를 늘리거나 줄이는 등 행동 기회 자체를 조작하는 효과들이 특징적이며, 그 외에 클릭을 소모하지 않고 크레딧[각주:3]을 벌어들일 수 있는 카드나, 상대의 핸드 크기 자체를 줄이는 두뇌 피해를 주는 카드 등 다양한 효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난한 난이도와 성능으로 게임을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들에게 권장되는 세력입니다.



진테키는 생명공학을 통한 인체 개조와 클론 생산에 강점을 둔 두뇌 기술의 일류 기업입니다. 진테키는 카드의 적색이 보여주는 것처럼 가장 공격적인 기업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테키의 카드는 러너에게 직접 넷 피해[각주:4]를 주는 카드나 해킹을 즉시 끝마치게 하는 효과 등 공격적인 효과들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웨이랜드 컨소시엄은 건설업에 기반을 둔 군산 복합체입니다. 웨이랜드 컨소시엄의 카드는 자산이나 아젠다는 물론 아이스[각주:5]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카드에 크레딧을 벌어들이는 효과가 붙어 있어 부유한 플레이를 하기에 용이하며, 가성비는 다소 떨어지지만 효과는 강력한 고가의 아이스들도 다수 포진하고 있습니다. 다만 강력한 효과의 대가로 페널티를 받는 카드들도 있어 신중함이 요구됩니다.



러너 세력



셰이퍼는 다른 목적보다도 해킹 그 자체를 즐기는 해커들입니다. 셰이퍼는 모든 보드게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원 운용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들과, 연구개발부[각주:6]를 목표로 해킹할 때 이득을 취하는 효과들을 다수 가지고 있습니다. 특유의 안정성 덕분에 안드로이드: 넷러너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권장되는 세력이기도 합니다.



크리미널은 이름이 말해주듯 오로지 개인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해킹하는 범죄자들입니다. 컨셉에 맞게 크리미널의 카드에는 조건부로 크레딧을 벌어들이는 효과가 많이 달려 있고, 또한 기업의 방어에 맞서는 대신 이를 우회하거나, 해킹을 시도할 때 이득을 보는 카드들도 많이 있습니다. 크리미널은 기업의 본부[각주:7]를 해킹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으므로, 크리미널을 상대하는 기업은 본부에 대한 방비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나크는 무정부주의자라는 이름답게 거대 기업에 대한 분노와 파괴욕에 따라 움직이는 해커들입니다. 아나크의 카드들은 해킹에 성공해 상대의 카드를 폐기할 때 그 비용을 무시할 수 있는 효과나, 페널티를 담보로 막대한 이득을 얻는 효과 등, 상당히 저돌적인 효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나크의 또 한가지 특징은 바이러스의 존재입니다. 바이러스는 기업의 아이스를 약화하거나 해킹에 성공했을 때 추가적인 보상을 주는 등 다양한 보조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총평


요점 하나. 완성된 하나의 패키지, 다수의 확장팩의 존재.

요점 둘. 재현도 높은 사이버펑크 장르의 게임.

요점 셋. 진영에 따라 바뀌는 규칙, 쇄도하는 SF 용어.




보드게임을 하는 데 있어 최대의 난점은 바로 사람을 모으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보드게임 하면 일단 어렵거나 지루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고, 화려한 PC 및 콘솔 게임들에 비해 비주얼적으로 볼품없다보니 시선을 끌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1인 혹은 2인 플레이가 가능한 보드게임들은 그만큼의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안드로이드: 넷러너는 확장팩을 고려하더라도 다른 TCG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때와 비교하면 비용이 적게 드는 편이기에 더욱 추천할 만합니다. 또한 저처럼 평소 SF나 사이버펑크 장르에 관심이 큰 사람이라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한 번 뛰어들어보기에 손색이 없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안드로이드: 넷러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게임 외적인 부분에 있습니다. 바로 개발사의 라이선스 계약 만료로 인해 올해 10월 22일부로 더 이상의 생산이 중단되었다는 점입니다. 국내에서는 그렇게 인기가 있는 시리즈가 아니다보니 아직 한글판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외국에서의 상황은 상당히 처참합니다.


더욱이 가장 최근에 발매된 확장팩인 Reign and Reverie는 예약판매 물량이 마지막 물량이 되어 사실상 한정판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한글화가 아직 되지 않은 최근작들의 경우 앞으로의 한글화 자체가 불발된다고봐도 무방하고, 남아있는 재고도 점점 줄어들 테니 우리로서도 마냥 두고 볼 상황은 아니긴 합니다.

  1. Living Card Game. 다음 문단에 설명 [본문으로]
  2. 아젠다를 획득하는 것 이외에도, 기업은 러너의 핸드를 마이너스로 만들어서(플랫라인), 해커는 기업의 덱을 모두 소진시켜서 승리할 수도 있다 [본문으로]
  3. 안드로이드: 넷러너의 화폐 단위 [본문으로]
  4. 러너의 손에서 카드 하나를 버리는 효과. 러너의 패는 체력과 같으므로 직접적인 공격 효과와 같다 [본문으로]
  5. 러너의 해킹을 방해하는 기업의 방어 수단 [본문으로]
  6. 기업의 덱을 일컫는 용어. 연구개발부로의 해킹에 성공하면 가장 위의 카드를 확인하며, 가능하다면 폐기할 수 있고 아젠다일 경우 즉시 점수를 획득한다 [본문으로]
  7. 기업의 핸드를 일컫는 용어. 본부로의 해킹에 성공하면 카드 한 장을 무작위로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폐기하거나 아젠다일 경우 획득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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