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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21. 21:00


신생 인디 게임사 Thing Trunk의 첫 작품 북 오브 데몬(Book of Demons)이 2년 여의 얼리 억세스를 마치고 12월 14일 정식 발매되었습니다.


‘덱 빌딩 핵 앤 슬래시 어드벤처’라는 긴 장르를 내건 북 오브 데몬은 악마의 힘에 사로잡힌 마을과 이를 구원하는 주인공이라는 전형적인 던전 탐험 게임의 클리셰를 따르지만, 여기에 핵 앤 슬래시의 호쾌함아날로그 느낌의 비주얼을 버무려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날로그 느낌이 물씬나는 그래픽


페이퍼 아트와 카드로 이루어진 '북 오브 데몬'의 세계



북 오브 데몬의 그래픽은 현실감 넘치는 실사풍도 캐주얼한 느낌의 카툰풍도 아닙니다. 대신 이 게임은 아날로그 느낌이 물씬 나는 페이퍼 아트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등장 캐릭터는 물론이고 드롭되는 아이템이나 필드 오브젝트, 스킬 이펙트, 인터페이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두꺼운 종이를 오려 만든 듯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게임 내의 아이템과 스킬은 모두 카드로 나타나며, 당연하게도 몬스터 사냥이나 오브젝트 파괴, 탐험 보상 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카드들을 한정된 자원 안에서 어떻게 조합해 적재적소에 사용하는지가 이 게임의 중요한 전략적 포인트가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잘 벼려낸 핵 앤 슬래시의 ‘싸우는 맛’


핵 앤 슬래시 장르 본연의 재미


순수와 장르가 대립하는 문학과 달리, 게임에는 순수 게임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게임이 장르의 정체성 아래에 자신만의 게임성을 정립하죠. 그만큼 게임에 있어서는 그 장르가 추구하는 재미를 잘 살려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북 오브 데몬은 핵 앤 슬래시라는 장르 본연의 재미를 잘 살려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평타와 짧은 쿨타임의 스킬로 쉴새없이 자르고 베는 손이 바쁜 액션과, 아이템을 수집하고 업그레이드하면서 강해져가는 자신의 캐릭터를 보는 즐거움을 잘 보여주죠.



제한된 이동 경로 : 전투의 몰입감? 불편한 조작감?



북 오브 데몬의 저돌적인 게임성은 특유의 트래킹 이동에서 정점에 달합니다. 자유롭게 필드를 돌아다닐 수 있는 몬스터들과 달리, 플레이어 캐릭터는 오로지 정해진 길 위에서 앞 뒤로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투 중 후퇴하고 싶다면 그냥 뒤를 클릭하는 게 아니라 마우스를 누르고 있어야 한다는 점, 제한된 이동 경로에 몬스터 충돌 판정까지 있어 몬스터 단 두 마리에게도 포위를 당할 수 있다는 점 등 불편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답답하고 불편한 이동은 단점이기도 하지만 전투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게임적 장치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집중력을 잃을만 하면 다수의 몬스터에게 포위를 당하거나 원거리 몬스터들이 이동 경로에 십자포화를 날려대는 등 제한적인 이동으로 인한 위기 상황이 심심찮게 연출됩니다.



소홀하지 않은 전략성과 편의성


실시간 덱 빌딩


그렇다고 단순히 썰고 베기만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자칭하는 장르명의 ‘실시간 덱 빌딩’이 말해주듯 상황에 맞춰 카드를 교체해가며 싸워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북 오브 데몬의 소모 아이템, 장비 아이템, 스킬 은 모두 카드 형태로 존재합니다. 이 카드들은 모두 같은 퀵슬롯을 공유하며, 소모형 아이템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마나를 자원으로 사용합니다.



장비를 장착하면 그 장비의 요구치 만큼 마나가 잠김 상태가 되고, 스킬을 사용하려면 잠기지 않은 마나 중 일부를 소모해야 합니다. 즉 더 좋은 장비를 많이 장착할수록 스킬을 쓰기 위한 마나는 적어지는 셈입니다.


게다가 몬스터의 특징에 따라 효율적인 장비 세팅이나 필요한 아이템 또한 달라지고, 한정된 퀵슬롯 때문에 소모형 아이템들도 무작정 장착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전략적이고 유연한 덱 변경이 필요한 것이죠.



예컨대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는 주변에 추가 피해를 주는 장비를, 화염 타입(불타는 하트)의 적을 상대할 때는 빙결 효과의 무기를, 상태 이상을 날려대는 적을 상대할 때는 치료제(remedy)를 장착하는 식으로 적재적소에 덱을 바꿔주어야 합니다.


다행히 인터페이스에 들어갈 때는 게임이 느려지기 때문에 (하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빠르게 덱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레벨업 스탯 분배



다른 RPG 게임들처럼 북 오브 데몬도 스탯 분배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몹시 간결하죠. 이 게임에서는 레벨 당 하나씩 주어지는 수치를 체력이나 마나에 분배할 수 있습니다.


체력은 오로지 캐릭터의 내구력에만 사용되고, 마나는 다양한 장비와 스킬에 골고루 사용되기 때문에 캐릭터의 전투력을 간접적으로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택되지 못한 스탯도 그냥 버려지지는 않습니다. 체력을 선택했다면 마나, 마나를 선택했다면 체력 하나가 마법 가마(magical cauldron)에 저장되어 던전에서 찾은 다른 특수 보상들과 함께 해금되기를 기다립니다.


이 보상들은 술집 여종업원(barmaid)에게서 해금할 수 있으며, 그 비용은 매번 비싸집니다. 하지만 마법 가마에 저장된 보상은 캐릭터가 죽으면 모두 사라지므로 비용과 리스크를 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소한 디테일에서 발휘되는 편의성


위의 이동 시스템이나 한정된 퀵슬롯 등에서 오는 불편함이 잘못 만든 것이 아니라 의도된 불편함이라는 생각하는 이유는, 게임성을 위해 포기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사용자 편의에 공을 들인 흔적이 상당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던전 탐험에서의 디테일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 던전 탐험은 여러 번의 탐험을 통해 조금씩 지하로 내려가는 방식을 취하는데, 탐험 한 번의 길이를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탐험 도중 얼마든지 마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완료 보상을 자주 받고 싶다면 짧은 길이를, 한번에 큰 완료 보상을 얻고 싶다면 긴 길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탐험 동안 모든 오브젝트를 파괴하고 드롭된 아이템을 모두 회수하면 클린 보너스를 얻을 수 있는데, 아직 탐험하지 않은 경로나 놓친 오브젝트, 아이템 등이 있다면 이를 지도에 표시해줍니다.


게다가 이미 모든 탐험이 끝난 곳은 붉은 발자국으로 표시해 불필요한 이동을 줄여주며, 일단 한 층이 클리어되면 다시 출구까지 되돌아가지 않고도 아이콘을 클릭해 언제든지 층에서 빠져나갈 수 있죠.


추가로 위에서 문제삼았던 이동 또한 굳이 마우스를 계속 클릭할 필요 없이, 한번 클릭하면 몬스터를 만나거나 갈림길이 나오기 전까지는 자동으로 이동하는 시스템을 취해 유저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총평


요점 하나. 싸우는 맛이 살아있는 핵 앤 슬래시 게임, 하지만 취향에 따라 지루할 수도.

요점 둘. 몰입도를 북돋아주는 제한된 이동, 하지만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요점 셋. 디테일에 신경 쓰는 신생 인디 개발사의 작품. 미래를 기대해 보자.




전체적으로 북 오브 데몬은 디아블로 이후의 숱한 핵 앤 슬래시 게임들의 장점은 받아들이면서도 장르 특유의 단조로움에서 오는 지루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그래도 장르 특성상 반복되는 부분이 많다보니 지루해지기 쉽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요.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게임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취향의 문제라고 할 수 있죠. 만약 핵 앤 슬래시 게임을 좋아하고 비실사풍 그래픽에 큰 거부감이 없다면 한 번 도전해보아도 좋은 게임인 것 같습니다.


북 오브 데몬은 시리즈 프로젝트인 Return 2 Games의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개를 보니 시리즈의 게임들 모두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을 모티브로 한것으로 보이고, 아마 같은 느낌의 페이퍼 아트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나올 Return 2 Games 총 7종을 모두 구매할 수 있는, 일종의 시즌패스인 서포터즈 팩 또한 스팀에서 판매 중입니다. 하지만 72,000원에 달하는 가격을 첫 작품만 보고 투자하기는 어려우니,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그걸 보고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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